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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2일 금요일

제주 감귤(하우스 감귤)

오늘 갓 딴 하우스 감귤을 소개 합니다.

 

딴 곳은 서귀포시 가시리 쪽 귤이고요 당도는 11.6 브릭스 이상가는 귤입니다.

 

저희 장인어른이 농사지은 것인데 정말 달고 맛있네요.

 

혹시라도 구입하고 싶은 분은 연락주세요. ㅋㅋ 마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드리겠습니다.

 

직거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서 그냥 한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참고하세요.

 

(010-8663-3668)

 

 

 

 

 

 

2009년 6월 10일 수요일

제주 팔삭을 아시나요?

제주 팔삭은 어떻게 보면 나스미깡(거의 식초를 만들때 사용했다고 하는 아주 시고 쓴 귤의 일종으로 관상용으로 제주도 시골에서 흔히 볼수 처럼 귤의 일종)처럼보일 수 있지만 나스미깡보다는 휠씬 덜 쓰고 알맹이가 입에서  통통 잘 터지는 귤로서 특히 내가 3~4에 즐겨먹는 귤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귤보다 이 팔삭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더라구요(제 주위분만 놓고 봤을 때, ㅎㅎ) 아무튼, 이 팔삭이라는 것을 아직도 한번도 못 드셔보신 분이라면 적극 추천합니다. 특별히, 팔삭은 자몽과 아주 흡사한 맛을 내서 자몽 좋은하시는 분이 드시면 않은 자리에서 한 5개는 먹을 수 있을것 같입니다. 저두 한 5개는 먹을 수 있겠더라구요. 이것이 은근히 중독성이라 한번 먹으면 계속 땡기는 것이 참 귤이 다 소비될 쯤에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귤의 일종인 것같아 글을 써 봅니다. 귤 모양은

이렇게 생겼으며, 먹는 법은 위와 아래에 약간씩 도려내고 옆을 약간의 간격으로 칼집을 내어 벗겨 먹으면 먹기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내년에 혹시 드시고 싶은 분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택배 착불로 저렴한 가격에 보내드리겠습니다.

 ( 010-8663-3668 (윤성원)) 팔삭을 모든 국민이 다 먹어볼수 있는 그날까지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감귤 유래(감귤의 종류) by [출처] 감귤의 종류

일남1호   암기조생   궁본조생   한라조생   삼매조생   고림조생   산천3호   신익조생

일남1호

일본 미야자끼현에서 흥진조생의 한 가지에서 착색이 빠르고 감산이 빨리되는 과실이 달리는 것을 발견하여 고접 및 묘목을 육성하여 1988년에 일남1호로 이름붙여졌고 제주에는 1990년 도입, 1993년에 선발(選拔 : selection)되었다.
일남1호는 나무의 모양은 약간 개장성이고 수세는 온주밀감 중에서는 보통이나 극조생 품종 중에서는 강한 편에 속한다. 가지의 발생각도는 좁아서 직립으로 되기 쉽다. 또 다른 극조생 온주밀감 품종처럼 가지가 밀생하지 않고 가지가 길고 약간 굵은 편이다. 잎은 길고 면적은 넓은 편에 속한다. 엽형지수(잎길이/잎폭)는 41로 작으며 가늘고 긴 상태로 보인다. 꽃의 크기는 큰 편이다. 꽃의 착생상태는 기존의 극조생온주에 비해서 유엽화 비율이 높으며 착과율도 좋지만 수세가 강하기 때문에 초기 결실하는 나무는 착화량이 약간 적은 경향이 있다. 개화시기는 다른 극조생온주와 비슷하다.
과피의 착색은 9월중순부터 시작하여 10월 중순에 완전 착색되나 10월상순부터 출하가 가능하다. 착색은 과정부(果頂部)부터 시작되지만 과경부(果經部)도 비교적 빨리 녹색이 없어진다. 과피의 색은 다른 극조생보다 짙다. 과즙의 당도는 숙기에 9~10 °Bx로 10월 하순에는 11°Bx에 달한다. 과즙중의 산도는 숙기에 1.2% 정도이다. 과형지수(횡경/종경)는 142정도로 편평하며 크기는 125g내외이다.

암기조생

1978년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흥진조생의 변이지로 발견된 품종으로 감산이 빠르고 식미가 뛰어난 품종이다.
수형은 분지각도가 좁아서 약간 직립성이며 수세는 온주밀감중에서는 중간정도이나 극조생 온주 중에서는 강한 편에 속한다. 춘지는 강한 신초가 발생하며 결실초기에는 결실성이 다소 나쁘나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격년결과성도 적다. 잎은 흥진조생에 비하여 가는고 길며 끝이 뾰족하다. 절간은 짧고 가지가 밀생하기 쉽다. 개화 최성기는 흥진조생보다 약간 빠르다.
과면은 매끄럽고 과피는 얇다. 착색은 9월 중, 하순경부터 시작되며 10월 중, 하순에 완전 착색된다. 10월 중순경에는 과즙중의 당도가 10∼11도 내외로 상승하며 계속 착과시켜두면 더욱 상승할 수도 있지만 부피과가 발생하기 쉽다. 산도는 1% 이하로 떨어지나 11월까지 착과시켜두어도 0.8%정도를 유지하여 품질저하가 적다. 해에 따라서는 비가 많이 오는 경우 품질이 떨어지고 10월 하순이후에 부피과가 생기기 쉽다. 그러나 건조한 해의 10월 하순∼11월 상순에는 과육이 부드럽고 당산의 함량이 적당하여 최상의 품질을 가진 과실을 수확할 수 있다. 과실모양는 흥진조생보다 약간 편평하며 과피색이 극조생온주 중에서는 좋은 편이다.

궁본조생

1967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어 1981년에 우량 극조생으로 종묘등록이 된 궁본조생은 일본의 와까야마현의 원생지로 궁천조생의 아래쪽에서 발생된 변이지이다.
궁천조생에 비하여 잎은 작은 편이고 가지는 다소 밀생된다. 유목기에는 가지의 신장이 좋으나 결실기가 되면 마디 사이가 짧고 왜성의 나무가 된다. 수세는 다소 약하나 풍산성이고 해거리가 거의 없다. 과실은 극히 편평한 편이고 초기 비대가 좋으며 9월중순경에는 M-M급의 과실이 많다. 과면은 극히 매끈하고 과피가 얇으며 박피도 용이하다. 과피의 착색은 9월 상순경부터 녹색이 퇴색되어 9월 하순경에는 40∼50%의 착색이 된다. 과육의 성숙도 빨라서 9월 상순경부터 등홍색으로 착색이 시작되고 과즙이 증가되기 시작한다. 산은 9월 하순경에 1%내외로 감소되고 당도는 10 0Bx내외로 높다. 궁본조생은 일반적으로 착색이 빠르고 맛이 우수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한라조생

한라조생감귤은 1971년 일본 사가현에서 궁천조생의 가지변이로 나타나 1980년에 "시문조생(市文早生)"으로 명명한 품종이다. 제주에는 1980년에 도입하여 1986년에 "한라조생"으로 이름붙여졌다.
한라조생감귤은 수세는 약간 약하며 나무모양은 개장성으로 가지가 밀생하고 마디사이도 짧다. 단위결과성이며 결과수령이 빠르고 매년 착화량이 많아 결실량이 많아지게 되어 수세가 약하기 쉽다.
한라조생은 9월 상순부터 착색이 시작되어 하순에는 50%이상 착색되어 9월 20일부터 수확이 되어 신익조생보다 1주일정도 빠르다. 10월 중순 이후는 부피과 발생이 많으므로 10월 상순이전에 수확, 출하를 끝내야 한다. 과중은 110g으로 대과종이며 당도가 9.3OBx로 신익조생보다 높고 맛이 좋다.

삼매조생

1964년에 송산조생의 아조변이로 육성된 것으로 제주에는 1986년 우량 품종으로 선발되었다.
삼매조생감귤은 수세가 중정도로 신익조생과 차이가 없으나 유목이나 고접한 나무는 수세가 약하여 왜소해진다. 잎이 작고 마디길이도 짧으며 녹지가 총생한다. 결실성이 아주 좋으며 짧은 결과모지에서 많이 착과하여 과다결실이 되기 쉽다.
삼매조생감귤은 수확기가 9월 25일 경으로 극조생종이며, 특히 착색이 빠르고 산의 감소가 빨라 9월 초기에도 먹을 수 있으며 9월 말이면 산의 감소가 지나쳐 맛이 담백해진다. 과중은 68g으로 소과중이며 당함량이 9.7 0Bx로 높고 당산비가 높아 맛이 좋다. 과실의 겉모양은 신익조생과 차이가 없으나 과경부분의 껍질은 두껍고 부피가 쉽게되어 껍질 벗기기가 쉽다. 과피는 유과일 때는 매끈하지만 성숙이 되면 조금 거칠어진다.

고림조생

일본 시즈오까현에서 흥지조생의 변이지로 발견된 극조생온주로 1984년 품종등록되었다. 착색이 2주 정도 빠르고 잎이나 가지의 형태는 흥진조생과 비슷하며 수세는 같거나 다소 강하다. 미결실 상태의 유목이나 고접수의 도장지에는 가시가 있다. 극조생중에서는 수세가 왕성한 편이다. 격년결과성은 적으며 결실성이 좋다.
과실의 초기비대가 양호하고 과실의 크기와 과피의 두께는 흥진조생과 비슷하다. 과형은 흥진조생보다 편평하거나 같으며 120g 정도이다. 착색은 9월 중순경부터 시작되어 10월 하순경에 완전착색된다. 과실의 색은 흥진조생보다 진하다. 당도는 흥진조생보다 0.5∼1도 가량 높고 산함량은 낮다. 10월 중순경의 산도는 1.0% 정도로 낮아지고 이후의 감산은 완만하여 11월에도 맛이 좋고 부피과의 발생이 없다. 조기출하용으로는 약간 산이 강한 편이며 출하는 10월 중순부터 11월에 걸쳐 한다.

산천3호

산천조생은 일본의 후꾸오까현이 원생지로 궁천조생의 아주지 선단에서 과실이 편평하고 착색이 빠른 변이지를 1970년에 발견되었다. 그 후 1980년부터 후꾸오까현 원예시험장에서 조사에 착수하여 우량한 극조생계임을 확인하였다.
유목기에는 생장이 왕성하나 결실기가 되면 수세가 궁천조생보다 약하게 된다. 궁천조생에 비하여 잎이 다소 작고 마디사이가 짧으며 지엽이 밀생한다. 개화기는 궁천조생과 비슷하고 풍산성이며 해거리가 거의 없다. 과실은 과형지수가 140정도로 매우 편평하고 9월 상순경부터 녹색이 퇴색되기 시작하여 10월 상순경에 거의 착색이 된다. 10월 중순이후 완전착색이 되면 과실의 부피가 되고 맛이 담백하며 9월 하순경 50%내외의 착색이 될 때가 당.산함량이 가장 적당하여 맛이 좋다. 따라서 수확기의 조절이 중요하고 출하기간도 짧은 편이다. 이 계통의 특징은 연년 결실성이 높고 대부분 꽃이 2∼3매의 잎을 갖는 유엽화가 많다는 점이다.

신익조생

신익조생은 1972년에 제주시험장에서 궁천조생 재배 포장에서 변이수로 발견한 품종이다. 1974년에 온주밀감에 고접하여 특성을 조사한 결과 궁천조생보다 숙기가 1개월 정도 빠른 것이 확인되어 'JC-6'으로 계통 번호를 부여한 후 1980년에 "신익조생"으로 명명하였다.
신익조생 감귤은 수세가 중간정도이고 나무모양은 개장성으로 1년생 가지가 궁천조생 보다 약간 긴 편이다. 개화기는 5월 23일 경으로 궁천조생과 비슷하나 숙기가 9월 27일 경으로 궁천조생보다 1개월 정도 빠르다. 수확기가 빠름으로서 수세의 회복이 빠르고 동화물질의 축적이 많아 꽃눈 분화가 잘 되고 착과율이 높아 수량성이 좋다.
신익조생은 숙기가 9월 하순으로 과피선숙형이다. 과중은 90g으로 소과종이며 과육율을 78%로 궁천조생보다 높아 가식부가 많은 편이다. 당도는 8.9°Bx로 다소 낮으나 산도가 낮아 당산비에서는 궁천조생과 큰 차이가 없다.

제주감귤유래 (근,현대) by [출처] 감귤의 유래..(근,현대사)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동안, 새로운 감귤품종이 도입되었다. 이전보다는 품질이 좋은 계통이 심겨지면서부터, 점차 재래종은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과거에 감귤재배가 많았던 곳에서는 병귤을 비롯하여 당유자, 유자, 진귤, 청귤, 동정귤 이 외에도 변이(變異)되거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품종만이 남아있다.

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의 도입은 별로 오래되자 않았다. 이조말엽 박영효가 잠시 제주에 왔을 때 일본에서 도입한 감귤나무를 제주시 구남천에 있는 과수원에 심었다고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으나, 감귤나무는 남아 있지 않다.

재래종을 제외한 제주에서의 감귤재배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02년 프랑스 출신 엄탁가(Esmile J. Taque) 신부가 제주에 오게 되어 1911년 일본에서 온주밀감 15그루를 들여와 심은 것이 현재 제주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는 온주밀감의 효시이다. 서귀포시 서홍동에 있는 천주교 복지 수도원에 심었던 나무 중에 1그루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품종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인 미네(峰)도 1913년에 많은 온주밀감 묘목을 도입하여, 서귀포시 서홍동에 심었던 감귤나무 품종 중에서 일부가 제주농원에 남아 있다. 이 농원에는 그 후 심겨진 하귤, 와싱톤네블, 기주밀감, 문단 등의 품종이 남아있다. 또한, 서귀포시 신효동에는 김병호가 목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담배쌈지에 담아 가지고 온 하귤(夏橘) 종자를 파종하여 자란 품종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온주밀감, 하귤, 와싱톤네블, 기주밀감, 문단(文旦), 금감자, 팔삭(八朔), 금귤 등 여러 종류의 감귤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이 만든 농민회가 중심이 되어 곳곳에서 농민들에게 묘목을 나누어주며 장려에 힘을 썼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 생산되는 감귤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공급량이 많아졌다. 제주에서 생산된 감귤이 비싼 값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감귤재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중 일부 품종만이 해방 후까지 재배되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4.3사건과 한국전쟁으로 생활 터전도 잃은 농민들이 감귤재배에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가 없었다. 휴전이 되고 점차 생활이 안정되면서 밀수입되던 감귤이 없어졌다. 이때부터 몇 곳에 남아있던 감귤은 비싼 값에 팔리게 되었다.

‘대학나무’로 불릴 정도로 제주에서는 가장 소득이 높은 작물로서 빛을 보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감귤의 재배 면적이 늘어났다.

1960년대 초부터는 감귤을 재배하고자 하는 농가들도 많아졌다. 특히 1964년부터는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으로 정부지원에 의하여 급속히 신장하기 시작하였다.

불과 10년 사이에 10,000ha 이르렀다. 계속되는 재배면적 확대에 따라 1999년에는 25,823ha에 63만 톤 이상이 생산되어 우리나라의 제1의 과수로 자리잡고 있다.

재래품종으로는 금귤, 산귤, 청귤, 동정귤, 유자, 유감, 당유자, 홍귤, 감자, 석금귤, 편귤, 사두감, 주감 등 22개 품종이 재배되었다. 그러나 생식용으로는 맛이 없고 품질이 떨어져 새로운 품종으로 전환되었다. 지금은 병귤, 당유자, 청귤, 동정귤, 홍귤, 진귤, 광귤 또는 지각(只殼) 등 몇 품종이 내려오고 있다. 제주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는 감귤품종은 거의 대부분 온주밀감이다. 이외로 소량의 만감류를 생산하고 있다. 재래종 감귤은 몇 품종을 제외하고는 거의 도태되었다. 현재 상업적으로 재배하고 있는 품종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되었고, 일부 품종만이 현지 선발을 거쳐 재배되고 있다.

1954년부터 재일 교포 등에 의해 도입되기 시작한 묘목은 1970년까지 349만 주가 넘었다. 1960년대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으로는 당시 장려품종으로 지정되었던 궁천조생(宮川早生)과 임온주(林溫州)가 주로 도입되어 심어졌다.

이외로 삼보조생, 흥진조생, 입간조생, 송산조생, 정관조생, 시환조생, 남감20호, 미택온주, 향산조생, 번전조생, 석천조생, 삼산온주, 십만온주, 대암5호, 청도온주, Silver Hill 등 기호성이 있는 온주 밀감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우량 품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감귤품종이 도입되어 심어졌다. 수확시기에 집중 출하를 막기 위하여 극조생온주밀감과 만감류를 재배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따라 극조생온주밀감인 궁본조생, 유택조생, 다원조생과 늦게 수확하는 계통의 온주밀감인 금촌옥주, 오태온주, 반야온주, 만감류로는 품질이 우수한 궁내이예감, 홍팔삭, 신감하를 비롯하여 오렌지 계통의 청가네블, 길전네블, 영목네블 등이 새로 도입되었다.

장려품종으로 선정된 품종은 극조생온주밀감으로서 농촌진흥청 제주 농업시험장에서 육성한 신익조생(濟州6號)과 삼매조생, 조생종 온주밀감으로는 흥진조생(興津早生)과 삼보조생, 중생종으로는 남감20호, 미택조생, 번전온주, 구능온주, 향산온주, 그리고 만생종 온주밀감으로는 청도온주와 뇌호온주 등 11개 품종으로 지정하였다. 만감류로는 황금하귤인 제주1호, 용연만감(宮內伊豫柑), 홍팔삭(紅八朔), 청견, 신감하, 청가네블, 정방네블, 그리고 재래종인 병귤 등 8개 품종을 좋은 품종으로 지정하였다. 나머지 품종은 품종갱신을 추진하였다.

1980년대에는 재배하는 품종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즉, 궁천조생과 임온주는 품질, 수량, 저장성 등의 문제로 없애기로 하였다. 그리고 극조생온주밀감의 비율을 높이고 3월 이후에 출하가 가능한 만감류의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장려품종에서 제외되었던 궁천조생은 과일모양, 저장성 등이 좋다는 이유로 재배농가가 선호함에 따라 재배면적이 오히려 증가하였다. 1981년부터 품종갱신 사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위한 자금이 지원되었다. 이는 품질을 위주로 하는 생산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우량품종으로서 일남1호, 암기조생 등이 도입되어 보급되었다

제주감귤 유래 (조선시대) by [출처] 감귤의 유래..(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태조원년(1392년)부터 제주도 귤유(橘柚)의 공물에 대한 기록이 계속되고 있다. 세종 8년(1426년)에는 호조의 게시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남해안에도 유자와 감자를 각 관서에 심게 하였다.

감귤(柑橘)이란 용어는 세조원년(1456년)에 제주도안무사에 내린 유지<세조실록(世祖實錄) 2권>에 나온다. “감귤은 종묘에 제사지내고 빈객을 접대함으로써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로 시작된 유지에는 감귤의 종류간 우열(금귤, 유감, 동정귤이 상이고 감자와 청귤이 다음이고 유자와 산귤이 또 그 다음), 제주과원의 관리실태와 공납충족을 위한 민폐, 사설과수원에 대한 권장방안, 번식생리와 재식확대, 진상방법의 개선방안 등을 기록하고 있다.

감귤은 약용으로, 생과용으로 그리고 제사용으로 매우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역대왕실은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과실세를 제정하는 동시에 관영 과원의 제도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과원과 상납과실을 관장하기 위하여 중앙에 전담관서를 두었으니 고려조의 동산색(東山色), 조선의 상림원(上林園, 후에 장원서<掌苑署>로 바뀜)이 그것이다. 조선의 상림원은 고려의 동산색을 개선한 것이므로 관영과원의 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다고 볼 수 있다. 지방 관영과원은 관찰사와 수령 책임하에 관노비나 군졸 등으로 하여금 관리케 하였으나 때로는 성적이 부진하여 민간의 과수원에 미치지 못하였다. 따라서 관은 진상물량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민폐를 끼치게 되었고 민간 과수원의 발달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 6권에는 제주 3읍에 희귀한 감귤나무를 심고 장려하며, 그 관리상태에 따라 상벌을 받도록 하였다.노예계급인 노비로 있는 사람이 당감자(唐柑子)와 당유자 각 8주, 유감 20주, 동정귤 10주를 심으면 노비계급을 풀어 주었다. 일반농가는 당감자와 당유자 각 5주, 유감과 동정귤 각 15주를 심으면, 면포 30필을 상으로 주었다.그러나 감귤나무를 심은 후 관리가 소홀할 경우, 상으로 준 면포의 반환은 물론 노비로 환원하도록 하는 강경한 장려 방침이 기록되어 있다.

탐라지(耽羅誌, 효종 4년, 1653년)에 실린 과원총설(果園總說)에 의하면 제주 3읍의 관과원은 36개소(제주 22, 정의 8. 대정 6), 12종, 3,600여주였으며 이때 공납과 진상을 위한 총물량은 생과 8종류 86,053개여와 약재가 116근 10량으로 계산된다. 관과원의 소산만으로는 이 수량을 채우기 쉽지 않았고 또 해난사고 등으로 수송에 애로가 많았다. 1704년 이형상  제주목사 당시에는 관과원이 42개소(제주29, 정의 7, 대정 6)로 증가되었었다. 감귤재배는 관리들의 강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공납량의  연차적인 증가로 지방관리들의 횡포까지 가중되어 민폐가 많았던 관계로 이조말기에는 차츰 재배주수가 감소되었으며 고종 31년(1893년) 진상제도가 없어진 이후는 과수원이 황폐화 되어갔다.

제주감귤 유래에 대해서(삼국시대~고려시대) (퍼온 글입니다.by [출처] 감귤의 유래..)

 

탐라(제주도)와 한반도와의 관계기록은 삼한시대에 마한(기원전 3세기~기원 후 4세기)과의 왕래로서 비롯하며 마한이 망한 다음 백제에 복속하였다.

일본서기(日本書記)에 의하면 수인제(垂仁帝)의 명에 의해 서기 70년에 田道間守라는 사람이 상세국(尙世國)에서 비시향과(非時香果)를 가져왔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비시향과는 감귤의 한 종류가 분명하며 상세국은 제주도를 지칭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 구마모토현의 오랜 전설에 의하면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삼한(三韓)에서 귤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심게 하였다고 한다.

고려사에 의하면 백제 문주왕 2년 (서기 476년) 4월 탐라에서 방물(方物)을 헌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고려태조 천수 8년 (서기 925년) 겨울 11월에 “탐라에서 방물을 바치다”를 시작으로 “방물을 바쳤다” “토물(土物)을 바쳤다” 하는 기록이 계속되는데 그 방물과 토물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교역 물품이나 방물에 감귤이 포함되었다는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정황으로 봐서 감귤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사 세가(高麗史 世家) 권7의 기록에 의하면 문종(文宗) 6년 (1052년) 3월에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자의 수량을 일백포로 개정 결정한다”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제주도의 감귤이 세공으로 바쳐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세공이라 함은 임시과세인 별공에 대하여 해마다 정례적으로 공납하던 상공(常貢)을 뜻하므로 탐라의 감귤세공의 유래가 자못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